엄마와 딸은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된다고 한다.
늘 싸우면서도 당연히 붙어다니는 오래된 친구처럼, 언젠가부터 엄마와 나는 그렇게 같이 늙어가고 있다.
그 세대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그저 ‘주부’로 살아온 우리엄마 역시 평생 자식 커가는 모습만 보고 살았다. 이렇다할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도 먼저 나서는 성격도 아니다보니 정기적인 모임이나 특별한 취미라 할 것도 없었다. 꽂꽂이며 그림이며 어쩌다 가끔 생기는 관심사도 본격적인 취미생활로 발전시키기엔, 역시나 ‘쓸데없는데 쓰는 돈’이아까워 “에이, 그런거 뭐하러해. 힘들어.”하며 관심없는 척을 하는 엄마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식 잘 되라는 마음에 집 앞 교회를 다니는 것 뿐이었다. 종교에 딱히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평일은 일하느라 주말은 쉬느라 엄마와의 나들이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자식 입장에서, 엄마가 ‘좋은하루 보내세요.’라는 따뜻한 카톡을 나눌 친구들이 조금은 생겨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평범하던 일상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찾아왔다. 타노스의 손가락이 튕겨진 것 처럼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느날 갑자기 인류를 절반 이상 없애버린 것처럼 도시를 고요하게 만들었다.직장인들에게는 재택근무 여부에 따라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가 구분되고, 자영업자에게는 죄목없는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동안, 고작 일주일에한 두 번 교회친구들과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던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들은 말그대로 창살없는 감옥이 된 집 안에 홀로 갇히게 되었다.
자칭 만렙 집순이들도 포기하게 만든 코로나 감금은 잊혀 있던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는 집안일은 해도해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었고, 봐도봐도 끝이 없는 티비프로그램은 몇 번째 재방송인지도모른 채 무한 반복이 될 뿐이었다.
“엄마, 엄마 뜨개질 할 줄 알아? 인터넷에서 봤는데 수세미 같은거 떠볼래?”
우연찮게 본 ‘코로나 극복 집콕 취미생활’에서 가장 만만하고 그나마 실용적인 것을 골라봤다.
“그래, 실 있으면 한 번 해보지 뭐.”
시큰둥한 엄마의 반응에 나름 이뻐보이는 한라봉 수세미 키트를 주문했다. 그리다 만 미로같은 도안과 코바늘, 오렌지색털뭉치로 구성된, 살짝 없어보이는 패키지가 배송되었고, 엄마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뜨개질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고, 그닥 관심없는 엄마에게 괜히 권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서운한 마음을 애써 표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퇴근한 저녁,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있는 나에게 엄마가 통통한 한라봉 세 개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뜨니까 헷갈리더라. 도안이 잘 안 보여서 유튜브 보면서 했어.”
마침 냉장고에서 말라가던 한라봉 하나가 있던 때라 후식으로 내민 줄 알았던 한라봉은 반짝반짝한 탐스런 자태를 띠는수세미였다. 몸통과는 달리 보들보들한 꼭지 실 덕분에 과일 한라봉이 아닌 수세미 한라봉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 이거 다 뜬거야?? 진짜 같아! 엄청 귀엽다!”
알고보니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요즘으로 치면 ‘공방 클래스’, 또는 ’원데이클래스’라 알려진 동네 사랑방같은 뜨개방 수업을 몇 년 동안 꾸준히 들었던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말그대로 기초가 탄탄했고, 침침한 눈으로 조그마한도안을 보기보다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유튜브를 찾아 다시 감을 살리는데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궁금한 것이 생기면 네이버보다도 유튜브를 먼저 찾아보는 엄마는 MZ세대인 나보다 훨씬 트렌디한 ‘요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라봉 세 개를 시작으로, 엄마의 본격적인 수세미 뜨개 생활이 시작되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엄마는 과일보다는 취향에 맞는 각종 꽃무늬 수세미를 뜨기 시작했고, 나는 엄마의 흥미가 끊기지 않도록 형형색색의 실을 사다 날랐다. 몇 달이 지나자 엄마는 이미 유명한 손뜨개 유튜버들의 작품을 분석하여 본인 취향에 맞게 개조하기에 이르렀고, 퇴근 후 나의 저녁식사 시간은 엄마의 수세미뜨기 상황을 브리핑받는 시간이 되었다.
매일 새로운 수세미들이 하루하루 넘치게 쌓여가기 시작하는 동시에 슬슬 코로나 시대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밀려있었던 지인들과의 약속 자리가 생길 때마다 나는 자랑 겸 엄마의 수세미를 인원 수대로 챙겨가서 선물했다. 내 나름대로 친구들의 취향에 맞춰 두 세개씩 챙겨가면서 왠지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수공예품(?)이지만 단가가 비싸지 않은 소모품이었기에 절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사이에도 선물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쌓여가는 수세미를 지인들에게 해치우기(?) 위해, 소포장지를 사고 선물용 장식품들도 사기 시작했다. 엄마의 수세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점점 더 퀄리티있는 포장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선물받는 사람 대부분은 “어머, 진짜 이쁘다. 어머니 솜씨 진짜 좋으시다. 얘, 이거 팔아도 되겠다.”라며 듣기 좋은 리액션을 보여줬다. 그도 그럴것이 거실 한 켠을 차지한 실타래들은 어느 공방 규모 못지 않을 만큼 많아졌고, 동시에 알게 모르게 엄마의 수세미뜨기 솜씨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예쁘단 말야. 이걸로 엄마 용돈 벌어보면 좋겠는데? 진짜 팔아봐?’
농담 반 진담 반인 주변의 칭찬은 나를 춤추게 했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스스로의 재능으로 번 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말하면 ‘노동의 대가’이지만, 일생의 경제활동이라곤 교회에서 열리는 바자회가 전부였던 엄마이기때문에 엄마의 능력이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는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결국 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했다. 사업자등록없이, 사진만으로도 쉽게 물건을 팔아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수백 명의 수세미뜨기 온라인 판매자와는 달리, 나는 내가 아닌 우리 엄마가 만든 수세미를 파는 것인 만큼, 나와 엄마를 대표할 이미지가 필요했다. 하루종일조용한 집에서 혼자 수세미를 뜨는 엄마 옆을 지켜주는(?) 우리집 반려동물 토끼가 제격이었다. 토끼를 모델로 상호명을정하고 만든 수세미들의 사진을 찍어봤다. sns를 하지 않는 나는 셀카고자일뿐만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1도 없다는 소리를 듣는 똥손이다. 푸른 바다, 예쁜 카페를 배경으로 다리가 길어보이는 사진보다 술자리에서 찍히는 해괴한 사진들이 가득하고, 연애하는 동안 데이트 사진 폴더 하나도 만들어본 적 없던 내가 수세미’라는 폴더를 만들게 되었다. 깨끗한 촬영용 시트지를 사서 수세미 잘 보이도록 요리조리 배치해보고, 사이즈를 나타내기 위해 손에 쥔 모습까지, 어떻게해야 수세미가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 색감을 잘 살릴수 있을까 고민하며 촬영을 했으니, 엄마의 수세미는 그렇게 한 사람을 바꿔 놓았다.
그렇게 작은 허접함들이 모여 드디어 엄마와 나의 ‘순홍이네 수세미 공방’ 스토어가 오픈되었다. 수세미를 팔아 엄마에게만족감과 자존감을 높여 주기 위함이 목표였지만, 이 과정에서 엄마와의 대화가 늘어났고, 대화 중에도 웃음이 늘어나면서, 이미 수익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 나는 엄마에게 수세미 종류와 색 조합을, 엄마는 나에게 촬영 방법을 서로 잔소리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잔소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뻔한 일상으로 특색없는 대화가 매번 새롭고 흥미로워졌고, 엄마의 생기있는 모습에 내가 기운을 얻는다. 엄마는 꼭 판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엄마의 작품 컬렉션이 만들어진것 같다고, 친구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수익금을 주면 더 좋다고하시겠지. 남에게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엄마의 재능이 조금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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