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지식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 현학이란 틀로 지식을 구분 짓거나 물질로부터 발생하는 공허함에 대한 위안으로 한정 짓지 말고,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무엇이 지식일까'를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열린 지식의 출발이다.
이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은 물론 앞으로 접하게 될 모든 지식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최대한 배제함을 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모든 지식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인 지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바로 열린 지식의 기본이다. [p.11]
대상과 나, 그 사이에 존재하며 둘을 연결시켜주는 이성과 감정에 대한 왜곡 없는 '앎', 이것이 바로 '통찰력'이다.[p.12]
사람들은 합리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도 동시에 추구한다. 불안한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하ㅂ리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게 정서적 안정감을 해친다면 선뜻 택하기가 어렵다. [p.39]
재미있는 점은 진정성에 대한 집착이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우리나라 대다수에게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를 대할 때 있는 그대로의 결과나 현상에 대해 판단하기보다는 그 행위를 한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 국민적 피해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순수해서'라고 하기엔 진정성을 너무 따진다. ... 결국 진정성을 강조할수록 '피해의식'애 대한 보상은 되지만 그와 함께 현실적 행위나 판단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성에 대해 궁금해하고 고민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너무 지나치게 몰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p.44]
사람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힘의 불균등이 존재하는데, 이 힘의 불균등이 '권력'을 만들어낸다. [p.48]
도덕성은 정치의 자격 요건이지 그 자체가 '정치'는 아니다, '도덕성 순위'를 매겨 집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집권을 한다 해도 도덕성 자체로 통치나 운영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진보 정치 세력=도덕성'이라는 틀이 너무 오랫동안 강조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진보 정치세력 스스로도 도덕성에 과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즉 다른 정치세력과 자신을 구분하는데 있어 1차적 요건으로 '도덕성'을 둔다는 말이다. [p.73]
결정타는 그럴 경우 도대체 진보와 보수가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었다, 그제야 확실이 알게 됐다. 우리나라 진보 세력이 '도덕성'아라도 하는 가치에 완전하게 갇혀 버렸음을,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여함에 있어 '도덕성'에 지나치게 과도한 비중을 부여했음을 말이다. ... 현재 우리나라 정치가 겉으로 보면 '보수'와 '중도'와 '진보'로 나뉘어 있지만 실상은 '수구 기득권 새력'과 '반독재 민주화 노동자 운동권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반독재 민주화 노동자 운동권 새력' 중 기존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일종의 소수 정당으로서 정치를 해왔던 이들이 다름 아닌 진보 정치세력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서구에서 발하는 '진보'의 개념과 일치하는 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다. 쉽게 맒해 '한국적 진보'인 셈이다. 당연히 크게 보면 서구에서 말하는 진보적 가치보다는 '반독재 노동자 민주 새력'으로서의 가치와 정체성을 훨씬 더 많이 지니고 있다. ... 그러다보니 아주 명쾌하게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사안이 아니면, 그러니까 동성애 문제라든지, 사형제 폐지와 같이 매우 보편적으로 무엇이 진보고 무엇이 보수인지 명확하게 가려진 사안이 아니면, 자신들의 반대편에 있는 '수구 기득권 세력'을 기준으로 진보의 위치를 정한다. 즉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서 진보인비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말이다. [p.74]
특히 무언가 강한 확신이 들 때, 그래서 그걸 다른 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강요하고 싶어질 때, 그래서 남의 말에 귀를 닫고 싶어질 때 떠올리려 정말로 애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다. 결코 바보도 아니다. 충분한 fact만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리고 당신이 그런 것처럼..."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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