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p.11]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하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p.11]
대개 인사성과 성실함은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사회에서나 빛을 발하는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건 가장 끔찍한 오해들 가운제 하나다. 가진 것이 없을 떄 저 두 가지는 가장 믿을 만한 칼과 방패가 된다. 타인을 가능하는 데고, 나를 무장하는 데도 좋은 요령이다. [p.19]
바닥이 있어야 세상이 땅 밑으로 꺼지지 않고 천장이 있어야 세상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지 않을 테니 천장과 바닥은 언제나 고맙고 필요한 내 편 같았다. 천장이 내려앉고 바다겡 뒹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천장과 바다이라는 것이 호시탐탐 내가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숙적처럼 느껴졌던 밤에 관해 쓰기를 나는 여러날 동안 망설여왔다. ... 누군가 고통을 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인지 내가 가장 혐오할 만한 부작용만 골라서 비처럼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 내 삶에 고통을 안긴 사람들의 얼굴이 천장에 투사된다. 나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속였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내게 암을 심었다고 확신했다. 이자들이 천장에 맺쳐 나를 내려다본다. 축축하고 무거워진 천장이 천천히 나를 향해 내려온다. 내려올 떄마다 그들을 향한 원망과 증오도 한층 더해진다. [p.21]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게 벌써 1년 전이다. 전보다 건강하고 전보다 긍정적이며 전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확신이 있다. 내가 그날 밤에 겪은 일 떄문이 아니다.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p.22]
머릿속이 먹구름이다. 이걸 하지 않았으면 그걸 좀 제대로 해주었다면 저게 애초 없었다면, 따위의 말들이 문장부호 없이 어지럽게 뒤섞였다가 뭉개지기를 반복한다. 이 반복이 열 번 이상 계속되고 나면 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이미 벌어져 끝난 일을 두고 오 새롭게 고통받느냐는 생각이다. 머리를 흔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어본다. 30초가 지나고 나면 나는 앞선 생각들을 처음부터 되풀이하고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p.25]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곽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피해자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기이하다. 개인사에서도 그렇고 국제정치에서도 그렇다. 스스로를 변치 않는 피해자로 설정하고 그러므로 옳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정치의 근성은 이 시대의 가장 비뚤어진 풍경 가운데 하나다. 당장 이기기 좋은 전략일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망친다. [p.26]
시간 낭비다. 그냥 먼지와 지문을 참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빨리 배우면 된다. [p.31]
나는 여태 내 삶이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딱히 성공적이지 못한 농담 말이다. 백 명의 관객 가운데 두 명밖에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이었다. ... 우리의 삼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p.32]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업삳. 그냥 좋은 일을 하면 된다. [p.35]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사람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p.36]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내가 누군가를 몹시 좋아하면 속수무책으로 믿고 지나치게 의지해버린다는 사실을 힘겹게 깨달아싿. 내심 혼자 힘으로 늘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애를 통해 이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 언제든지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고 더이상 믿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잊어버린 내 잘못이었다. ...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연애를 하기 위해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너무 벌려놓았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럴싸한 말장난이다. 그걸 대체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 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p.45]
살아있는 자가 죽음을 평가하는 건 거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내막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죽은 사람뿐이다. [p.48]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뜨겁게 살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오래되었고, 실제 그렇게 사게 된 것은 1년 정도 되었다. 병상에서 여러 번 생각했다. 뜨거움은 삶을 소란스럽게 만들뿐 정작 단 한 번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게 한 번 살아봤으니,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전혀 다르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p.52]
공동의 선이나 대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떄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심지어 거짓말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만이 오직 거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p.53]
선한 마음으로부터 악한 행동이 나올 수 있는가. 그렇다. '공동의 선이나 대의'라는 것은 어느 언덕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p.53]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배신과 실패를 직면하게 될 일이 반드시 생긴다. 이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면 평상시에도 자연스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p.60]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p.61]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발견했을 때, 우리는 공감과 이해보다 질타와 선 긋기를 우선하기 마련이다. [p.65]
지금이 밑바닥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떄가 밑바닥인 것 같습니다. 거기 이르고 나면 여기서 더 망해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니 생존을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됩니다. [p.67]
고통을 계량화하려는 모든 노력이 부질없듯이, 우리가 니체만큼 니체가 우리만큼 괴로웠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겪은 고통의 색깔이 어떤 것일지는 공감할 수 있으리라. 니체는 삶이 그를 완벽하게 배신했을 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p.68]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떄 글을 썼습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p.79]
불행은 발견되는 것이고 행복은 주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극복해보려 발버둥 쳐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과 끝내 주저앉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규명해보고 싶지만 쉽지 않다. 불행의 양과 질을 계산할 수 없으며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 또한 상대적이기 떄문이다. 불행에 대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검증 가능한 공식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p.97]
젊은 날은 객관화가 어려운 시기다. 내 노력을 알아주는 조직도 어른도 드물다. 정당한 대가를 바랄 수도 없다. 타인에 관한 경험이 적어서 내 불행만이 굉장히 특별하고 잔인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 든다고 상황이 개벽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 노력의 가격은 형편없고 나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하는 이도 없으며 때로는 폄훼하고 뒷말을 하고 진심을 곡해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심지어 그게 내 가족일 때 사람은 크게 좌절한다. [p.98]
<스타워즈>는 재능 있는 젊은이를 질투하거나 두려워할 것인지, 아니면 축복하고 응원해줄 것인지 관한 이야기다. <스타워즈>는 분노와 피해의식에 점령되어버린 청년의 선택이 어떻게 세계를 망쳤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스타워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부패할 수 있는지,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지에 관한 이야기다. [p.100]
'ETC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라하게 창업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0) | 2022.06.25 |
---|---|
왜 아가리로만 할까? (0) | 2022.06.24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 송 과장 편 (0) | 2021.12.27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2. 정 대리, 김 사원 편 (0) | 2021.12.26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김 부장 편 (0) | 2021.12.25 |